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내 독일에 나치는 필요없다/개변된 역사 (문단 편집) == 에티오피아 == 이탈리아에게 침략당해 식민지화가 되었다. 이후 이탈리아가 독일과 연합국에게 패전한 직후 독립했으며, 약소한 배상금을 받는다. 주인공이 그라치아니를 인계하면서 연합국에 참전하였고, 독일과 연합국이 지원한, [[PaK 36]]등 구형 독일 장비와 이탈리아군 노획 장비로 무장한 40만 병력이 [[지부티|프랑스령 소말릴란드]]를 점령하고 북아프리카 전선으로 진군하여 알제리 및 리비아를 점령한 프랑스 식민지군과 전투를 벌여 승리한다. 평화회담 논의에서 프랑스령 소말릴란드와 [[에리트레아]]를 요구하지만 독일을 제외한 인종차별 및 제국주의 정서가 남아 있던 다른 연합국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나마 주인공이 에리트레아를 받아 매각형식으로 넘기기로 영국과 합의를 보면서 영토를 얻게 된다. 추운 곳에서 적응을 하지 못할 점이 우려되어서 소련 대신 아시아 전선으로 파병하여 영국군과 함께 임팔에서 일본군을 막아낸다. 이후 에티오피아가 선례가 되어 많은 아프리카 국가들이 자주 독립을 꾀하고 있으며, 에티오피아는 이 나라들에게 독일에서 판매하는 미사용 무기들을 채권 형식으로 판매하고 아프리카 독립 운동가들의 군사 훈련을 돕는 등의 지원을 진행하면서 195-60년대에 본격적으로 독립을 시작했던 아프리카 국가들이 더 빨리 생겨날 가능성이 생겼다. 원 세계에서는 공산화되었지만, 이 세계관에서는 소련이 패전국이 되어 국제 영향력이 크게 감소한데다 당장은 내전에 빠진 상태이고 중국 공산당도 연합군에게 쓸려나가고 간신히 세력을 회복했지만 그마저도 연합국과 북중국 연방의 눈치를 봐야 해서 국제 정세에 신경쓸 수 없게 된터라 공산 세력은 원역사보다 빨리 몰락하게 생겼고 그 결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 체제가 공고히 유지 될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실제 역사에서 대한민국은 셀라시에 황제에 대한 빚이 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이탈리아에게 지배당했던''' 아픈 기억을 바탕으로 한국이 같은 고통을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자신의 근위대를 파견한 사람이 바로 셀라시에 황제였던 것.] 이후 종막에서는 아프리카의 여러 구 식민지들을 주축으로 하는 아프리카 연방을 조직했다. 현대의 유럽 연방과 비슷한 단체로, 현실의 아프리카가 말 그대로 지도 위에 줄을 긋는 방식으로(..) 나라로 만들어 버린 탓에 나라 내부에서 타 부족끼리의 내전으로 인한 상잔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 부족간 대표자들을 연방에 파견, 우선 부족별로 국가로 독립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이후 에티오피아는 이 아프리카 연방의 맹주로서 세계에서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국가로 그 영향력을 발휘할 예정. 그리고 아프리카 해방 작업에 벨기에가 흑인들의 국가라고 무시하고 반대하는 움직임을 보이자 곧바로 아프리카 연방의 이름으로 아프리카 내 벨기에 식민지로 진격, 벨기에군을 탈탈 털며 그 힘을 과시하게 되고 결국 벨기에가 식민지 해방 및 배상금 지급이라는 백기를 들게 만들며 국제 영향력도 확보했다. 후일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의 심장'이라는 별명과 함께 아프리카 연합국의 리더로서 국제사회에서의 자리를 굳혔지만, 이집트 등 일부 국가들과 갈등을 빚어 이들이 아프리카 연합을 탈퇴하긴 했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독립을 주도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에티오피아가 참전한 전쟁으로 인해 해방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가 에티오피아에 큰 힘이 되어주었고, 외교 고문인 에른스트 폰 바이츠제커에게 교육받은 아프리카에서 가장 우수한 외교관들이 강대국들 사이에서 원만한 외교를 유지하면서 현대까지 국제질서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제3세계]]의 지위를 지켜냈다. 셀라시에 황제의 후손이 그 위광을 업고 독재정치를 펼치다가 반발을 사 입헌군주로 물러났지만 아디스아바바에는 아직까지 메넬리크 2세와 하일레 셀라시에, 디트리히 샤흐트, 에른스트 폰 바이츠제커의 이름이 붙은 거리가 있다고 한다. 이 세계관에서 다루어지지 않았지만 에티오피아를 중심으로 하는 아프리카 연방이 생기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나비효과는 '''이스라엘이 등장하지 않았다.''' 물론 이는 독일에서 [[홀로코스트|유태인의 조직적인 학살]]이 일어나지 않아 [[시오니즘]]이 제대로 힘을 얻지 못한 것도 그 이유이긴 하지만 애초에 이스라엘의 건국 배경에 ~~[[혐성국]]~~영국의 [[맥마흔 선언|이중]][[벨푸어 선언|계약]]이 있었다는 것이 컸다. 이 세계관에서는 에티오피아라는 강력한 동맹국이 있기에 굳이 유대인들을 밀어줄 필요도 없어 이중계약이 존재 할 수 없고 이는 상대적으로 중동 또한 안정을 찾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팔레스타인이 독립했는지는 언급이 없어 알 수 없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